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 (문단 편집) === 국부천대 이후(1949 ~ ) ===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대만으로 도망 간 이후에도 [[1950년대]]와 [[1960년대]] 당시에는 대만 축구가 아시아 정상급으로 분류되었고, 실제로 대만 국내에서도 야구를 뛰어넘는 최고 인기 종목이기도 했다. 야구는 원래 대만에서 [[대만일치시기]]부터 인기가 좋았던 종목이었지만, 이후 본토에서 넘어온 [[중국 국민당]]이 왜색 스포츠라는 명목으로 야구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축구를 밀어주던 시절로, 실제로 1954, 1958년 [[아시안 게임]]에서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2대회 모두 결승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차지한 [[금메달]]이었다. [[http://blog.daum.net/wolf512/435|#]] 1954년 대회는 5:2로 완승했고, 1958년 대회는 연장전까지 가서 3:2로 승리했다. 현재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대표팀]]을 상대로 역대 전적이 '''6승'''[* [[1960년]] [[4월 30일]] [[타이베이시|타이베이]]에서 치러진 [[1960 로마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도중 폭력 사태로 경기가 중단되어 한국이 몰수패를 당한 경기 포함.] 1무 14패, 19득점 50실점이다. 그러나 [[1967년]]에 대만 홈에서 가진 아시안컵 예선에서 1-0으로 한국을 이겨 본 뒤로는 [[공한증|50년이 넘게 한국을 도저히 못 이기고 있다]]. 1967년 뒤로 한국전에서 9연패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아시아 국가 중 한국에 6승이나 거둔 나라는 의외로 많지 않다.[* 대한축구협회 기록 기준 일본(16승), 이란(13승), 호주(9승), 쿠웨이트/말레이시아/태국(8승). 물론 뒤의 세 나라들 역시 2000년대 이후로는 대한민국의 적수가 아니다.] 모두 1950~1960년대 승리로 지금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였던 기록이다. 사실 대만 대표팀은 [[중국]]과의 [[하나의 중국|정치적 문제]]로 인해 [[아시아 축구 연맹|AFC]]에서 축출되어 1975년에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OFC]]으로 편입되었고, 그래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지역예선까지 오세아니아에서 지역 예선을 치렀다.[* 그러나 이 당시 OFC는 전혀 체계화되지 않은 중구난방적 행정 때문에 [[A매치]]를 여는 게 힘들었고, 대만도 1년에 A매치를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한 적도 많았다. 게다가 오세아니아는 축구 자체가 [[비인기 종목]]이기고 하고... 결국 이게 대만 축구 몰락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그러다가 1989년이 돼서야 다시 AFC로 복귀했다. 이것이 대만 축구가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다. AFC 축출 시기에 축구의 인기가 야구에 완전히 밀려버리면서 대만 국내에서 축구는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했다. 현재는 [[베트남]], [[태국]], [[홍콩]] 같은 국가들에도 경기력이 완전히 밀릴 정도로 대만 축구의 실력은 아시아 최하위 수준이다. 최근 대한민국과 맞붙은 경기는 2007년 아시안컵 예선. [[2006년]] [[8월 16일]]에 대만의 홈 구장인 타이베이 중산 스타디움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과의 경기가 치러졌는데[* 2019년에 작고한 [[핌 베어벡]] 감독의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데뷔전이었다.], 경기장 잔디가 워낙 개판이라 패스나 슈팅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http://www.hani.co.kr/arti/sports/soccer/149694.html|결국 한국에게 0-3으로 패배하면서 선방했다]]. 경기 전에 대만 [[기레기]]들이 선수들에게 '''니네 2002년 때 심판 매수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개소리를 시전해 한국 국가대표팀의 심기를 자극했고, [[오만 쇼크]]를 들먹이며 몇십 년 만에 한국을 꺾을 기회라고 [[설레발]]을 쳤지만, 두 팀간의 실력 격차가 워낙 [[넘사벽]]이어서 대만 기자들은 결국 [[데꿀멍]]하고 말았다. 그리고 [[2006년]] [[9월 6일]], 3주 전의 그 인터뷰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는데, [[수원월드컵경기장|수원]]에서 열린 한국 홈경기에서 0-8로 관광당하며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358204|도합 0-11로 완전 아작나고 만 것이다]]. [[정조국]]이 전반 4분, 전반 46분, 후반 43분에 골을 넣으며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그리고 같은 조에 속했던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과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시리아]]한테도 박살나면서 6전 전패에 무득점 24실점으로 광탈했다.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이태호(축구)|이태호]] 감독은 “대만은 야구와 농구에 밀려서 축구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으며, 훈련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밖에 못하고, 그나마 모이면 이런저런 핑계로 10명 정도밖에 훈련장으로 나오지 않았다."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그만둬 버렸다고. 이렇게 열악한데다가 프로화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농구]] 및 [[야구]] 인기에 밀려 급격히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지간한 [[동남아시아]] 팀에게도 밀릴 정도로 [[동네북]]이 되어버렸다. 2006년 8월에 한국 아시안컵 예선을 치를 당시에 FIFA 랭킹이 144위였는데, 이후 급격하게 하락하며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아시아)#s-2|2015년 1월에는 무려 182위]]까지 추락했고, 이후 다소 반등하긴 했으나 2022년 12월 기준 랭킹도 157위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8년 8월에는 피파 랭킹 '''123위'''로 역대 대만 피파 랭킹 최고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때문에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지역예선에서는 1차 예선부터 치렀는데,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1승 1패(1-2, 3-2)를 주고 받았으나 원정 다득점에 밀려 [[광속 탈락|광탈]]했다. 2015년 2월 한국의 K3 챌린저스리그 우승팀인 [[화성 FC]]와의 경기에서 1:1로 비겼다. 이 경기만 놓고 보면 5:2로 깨진 [[캄보디아 축구 국가대표팀|캄보디아]]보단 나은 듯하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그래도 자국의 프로축구 리그가 인기가 매우 좋은 편이기 때문에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나 희망적인 측면에서도 대만이 캄보디아보다 상황이 낫다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 2014년 10월 8일 타이베이 홈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도 대만이 캄보디아에 0:2로 패했다. 게다가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아시아)#s-3|2018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도 1차 예선부터 치렀는데]] 2015년 1월 기준 FIFA 랭킹 198위로 캄보디아보다도 19위 낮은 [[브루나이 축구 국가대표팀|브루나이]]에 그것도 홈에서 0:1로 패배했다. ~~이쯤되면 [[부탄 축구 국가대표팀|부탄]]보다도 나은 게 없는 듯.~~ 하지만 2차전에서 2:0으로 이겨 기사회생하며 2차 예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1차전 홈 경기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태국]]전에서 0:2로 패하면서 역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아시아)/2차예선/F조#s-2.1.7|그래도 7차전 태국 원정에서 4:2로 패했지만 태국을 상대로 선제골을 포함해 두 골을 넣으면서 선전하긴]] 했지만... 예선 5차전에서 복병 [[투르크메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투르크메니스탄]]에 패하면서 아시안컵 예선 탈락을 확정했다. 그래도 뒤늦긴 했지만 2017년 [[대만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했고, 2018년에는 역대 최고 FIFA 랭킹인 123위를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성장 추세를 보이기도 했다. 2019년 [[아시안컵]] 본선 진출은 실패했지만, 챌린지컵 예선에서도 쩔쩔매던 팀이 나름대로 6승을 기록하며 의외의 선방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는 본선 진출이 확정되어, 1966년 이래로 참으로 오랜만에 [[아시안 게임]] 축구 종목에 참가하게 되었다. 물론 조별 예선은 1무 3패로 광탈. 저 1무도 무득점 무승부였다. 개리 화이트 감독 부임 이후 전 세계에서 대만계 및 화교 2세 선수들을 박박 긁어모으는 중이다. 이러다보니 [[화교]]가 많은 대한민국에서도 한 선수가 대만 대표팀으로 소집되었는데, [[제주 유나이티드]]와 K3리그 [[청주CITY FC]] 소속이었던 [[왕건명]] 선수가 그 주인공. 워낙 깜짝 발탁이라 국내에서도 기사가 여럿 났으며, K3리그 소속으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A매치 데이에 소집된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비자 문제 때문에 경기에 투입되지 못했다고... 하지만 6월 친선 대회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왕건명]] 선수와 같이 발굴된 화교 2세 선수들에는 주로 [[영국]]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은데, [[위건 애슬레틱]]을 거쳐 [[로스 카운티]]에서 뛰는 24살의 팀 추(중국어명 저우딩양周定洋) 선수처럼 경력이 꽤 되는 선수 뿐만 아니라, [[크리스탈 팰리스 FC]] 유스 선수인 윌 던킨 같은 2000년생 유망주도 소집되었다. 게다가 소집된 이후로 꾸준히 출전했다. 대만 축구계에서는 대단한 천재를 얻었다면서 좋아하지만, 역설적으로 2000년생의 어린 해외파 유망주보다 나은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층이 거의 없는 대만 축구의 현실을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국내 리그의 뼈대가 튼튼하지 않으니 부실한 국가대표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고로 윌 던킨은 대만 국가대표 선발 이후 [[크리스탈 팰리스 FC]] 1군에 끝내 데뷔하지 못하고 노르웨이 리그 스타벡으로 팀을 옮겼다. 또한 [[양안관계]]가 안 좋긴 해도 말도 어느 정도 통하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중국 슈퍼 리그]]에 몇몇 선수들이 진출해 활약하고 있다. 주요 중국리거로는 [[천보량]], 웬치하오, 스페인계 선수로 대만 국가대표 선택 이후 활약하고 있는 야키 옌 등이 있다. 대만 축구의 몰락을 소개한 기사가 있다. [[http://www.sports-g.com/2017/01/17/%EB%8C%80%EB%A5%99%EC%9D%84-%EB%96%A0%EB%82%AC%EB%8D%98-%EC%82%B4%EB%A0%A4%EA%B3%A0-%EB%96%A0%EB%82%9C-%EC%99%95%EB%85%84%EC%9D%98-%EA%B0%95%ED%98%B8-%EB%8C%80%EB%A7%8C|'왕년의 강호' 대만은 AFC 퇴출 후 몰락했다]] 2019년 3월에는 대만보다 FIFA 랭킹이 20단계나 낮은 144위 [[솔로몬 제도 축구 국가대표팀|솔로몬 제도]]에게 홈에서 0:1 패배를 당하는 충격을 2,000여명 이상의 홈팬들한테 선사했다.이런 패배로 인하여 대만의 피파 랭킹 순위는 더 추락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네팔 축구 국가대표팀|네팔]]에게 홈에서 0:2로 깨지고''', 시드 3팀답지 않게 전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물론, 네팔보다 대만이 압도적으로 잘한다는 건 아니었지만 결국 조 최하위로 마감한 뒤, 아시안컵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인도네시아]]에 패하며 아시안컵 최종예선조차 오르지 못했다. 왕지아종 감독은 이후 경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